폭스바겐이 중국에서 라이다를 단 첫 전기 SUV를 내놨다. FAW-폭스바겐이 9월 20일 출시한 ID. AURA T6다. 시작가는 12만 9900위안, 원화로 약 2560만 원이다. 달러로 환산하면 1만 9200달러 선으로, 유럽에서 팔리는 폭스바겐 전기차와는 값의 단위가 다르다.

눈여겨볼 대목은 값보다 구성이다. 폭스바겐이 독일에서 들여온 부품으로 채운 차가 아니다. 배터리는 CATL, 주행 보조 연산 칩은 호라이즌로보틱스, 전자 아키텍처는 샤오펑과 함께 만든 것이다. 독일 브랜드의 배지를 달았을 뿐 속을 채운 이름은 대부분 중국 업체다.

12만 9900위안에서 시작하는 네 개 트림

트림은 넷이다. 540 Pro가 12만 9900위안, 660 Pro가 13만 9900위안, 660 Max가 14만 9900위안, 660 Ultra가 16만 6900위안이다. 앞의 숫자는 CLTC 기준 주행거리를 뜻한다. 540 Pro만 59.9kWh 배터리를 쓰고 나머지 셋은 77.5kWh를 얹는다. 배터리는 모두 CATL이 공급한다.

모터는 네 트림이 같다. 뒤차축에 단일 모터 하나를 두고 최고출력 170kW, 마력으로 옮기면 228마력을 낸다. 출력으로 트림을 가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값을 올려서 얻는 것은 주행거리와 주행 보조 장비이지 가속 성능이 아니다.

가장 아래 두 트림의 차이는 1만 위안, 약 197만 원이다. 이 돈으로 배터리 용량이 17.6kWh 늘고 주행거리가 120km 길어진다. 국내에서 배터리를 키우는 옵션에 붙는 값과 견주면 낮은 편이다. 중국 시장에서 배터리 값이 얼마나 내려왔는지를 보여 주는 숫자이기도 하다.

주행거리 표기에 붙은 CLTC는 중국의 공인 측정 기준이다. 국내에서 쓰는 산업통상자원부 상온 복합 기준이나 유럽의 WLTP보다 느슨해서 같은 차라도 수치가 높게 나온다. 660km라는 숫자를 국내 기준으로 옮기면 대체로 500km 안팎으로 내려앉는다고 보는 편이 실제에 가깝다.

ID. AURA T6 중국 출시 행사
ID. AURA T6 출시 행사 / 사진=FAW-폭스바겐

라이다는 위 두 트림에만 들어간다

주행 보조가 이 차의 갈림길이다. 라이다는 660 Max와 660 Ultra에만 붙는다. 192채널 라이다에 호라이즌로보틱스의 저니 6H 칩을 물려 420TOPS의 연산 성능을 낸다. 시스템을 만든 곳은 카리존으로, 폭스바겐과 호라이즌로보틱스가 세운 합작사다.

이 조합으로 도심과 고속도로에서 목적지까지 차선 변경과 분기 진입을 알아서 처리하는 NOA를 쓴다. 여러 종류의 자동 주차 기능도 들어간다. 값이 1만 위안 차이 나는 660 Pro와 660 Max 사이에서 갈리는 것이 사실상 이 장비다.

라이다를 빼고 카메라만으로 주행 보조를 구성하는 방식은 원가가 낮지만 역광이나 야간, 정지한 장애물 앞에서 약하다. 중국 업체들이 지난 2년간 라이다를 기본으로 밀어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폭스바겐이 아래 두 트림에서 라이다를 뺀 것은 12만 위안대라는 값을 맞추기 위한 선택으로 읽힌다.

트림별 주행거리와 라이다 탑재 여부
ID. AURA T6 트림 구성 / 그래픽=카인사이트

전자 아키텍처는 샤오펑과 함께 만들었다

차의 뼈대가 되는 전자 아키텍처는 CEA, 중국 전자 아키텍처다. 폭스바겐이 샤오펑과 공동 개발한 것으로 이번 차에 얹혔다. 전자 아키텍처란 차 안의 제어기와 통신망을 어떻게 묶을지 정한 설계도다. 이 구조가 통합돼 있어야 무선 업데이트로 기능을 바꾸거나 새 기능을 얹을 수 있다.

CEA를 쓰면서 ID. AURA T6는 OTA 업데이트와 센트리 모드, 원격 제어를 쓴다. 실내 쪽에서는 4나노 공정 칩을 넣어 AI 모델을 차 안에서 직접 돌린다. 클라우드를 거치지 않고 음성 명령을 처리하겠다는 구성이다.

ID. AURA T6 실내와 15.6인치 중앙 디스플레이
ID. AURA T6 실내 / 사진=FAW-폭스바겐

4811mm 차체가 겨누는 자리

크기는 전장 4811mm, 전폭 1879mm, 전고 1648mm, 휠베이스 2836mm다. 국내 기준으로 보면 준중형과 중형 SUV 사이다. 앞 트렁크는 90L, 뒤 적재공간은 뒷좌석을 접기 전 576L에서 접은 뒤 1796L까지 늘어난다.

실내에는 15.6인치 중앙 디스플레이와 10.25인치 계기판, 25.8인치 AR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들어간다. 화면 크기만 놓고 보면 중국 신생 브랜드들이 지난 2년간 밀어붙인 사양을 그대로 따라간 모습이다.

차를 만드는 FAW-폭스바겐은 폭스바겐과 중국 제일자동차가 1991년 세운 합작사다. 30년 넘게 제타와 마고탄, 티구안을 찍어 내며 중국 내연기관 시장의 중심에 있던 곳이다. 그 공장에서 나오는 차의 속을 중국 공급사들이 채우게 됐다는 점이 이번 출시의 상징적인 대목이다.

폭스바겐은 중국에서 내연기관 시절의 점유율을 전기차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자체 개발을 고집하는 대신 샤오펑과 CATL, 호라이즌로보틱스의 것을 받아 쓰고 값을 12만 위안대로 내린 이번 차는, 브랜드가 그 방식을 바꿨다는 신호에 가깝다. 국내 출시 계획은 없지만 이 조합이 통하는지는 유럽 전략에도 그대로 영향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