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이 지난 16일 전기 핫해치 ID.3 GTI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브랜드는 이 차를 “GTI 50년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모델”로 소개했다.
숫자로도 그렇다. 최고출력 240kW, 326마력이다. 내연기관 골프 GTI 에디션 50보다 딱 1마력 높다. 상징적인 자리를 전기차가 가져간 셈이다.
GTI가 처음으로 뒷바퀴를 굴린다
더 큰 변화는 출력이 아니라 구동 방식이다. ID.3 GTI는 뒤 차축에 모터 하나를 얹은 후륜구동이다. 1976년 골프 GTI 이후 50년 동안 GTI는 앞바퀴를 굴려 왔다.
앞바퀴로 달리는 고성능 해치백은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간다. 가속할 때 조향이 한쪽으로 끌려가는 토크 스티어가 생기고, 코너에서는 앞이 바깥으로 밀리는 언더스티어가 먼저 나온다. 앞바퀴 두 개가 방향을 잡는 일과 힘을 쏟는 일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골프 GTI가 출력을 올릴 때마다 전자 장비를 덧대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뒷바퀴가 밀어 주면 앞바퀴는 방향을 잡는 일만 하면 된다. 구조적으로 풀리는 문제다. MEB 플랫폼이 원래 뒤 모터를 기본으로 놓고 설계된 덕에 따로 비용을 들이지 않고 얻은 구성이기도 하다. 내연기관에서는 뒷바퀴를 굴리려면 엔진 배치부터 다시 짜야 해서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변화다.
최대토크는 545Nm, 제로백은 5.6초, 최고속도는 200km/h에서 전자적으로 제한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요즘 전기차 중 특별히 빠른 편은 아니다. 다만 핫해치라는 장르가 절대 속도보다 몸놀림으로 평가받아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폭스바겐이 어디에 공을 들였는지는 분명하다.
601km를 달리고 29분에 80%를 채운다

배터리는 실용량 79kWh 리튬이온이다. WLTP 기준 최대 601km를 달린다. 고성능 해치백이면서 주행거리를 600km대에 올려놓은 점이 눈에 띈다.
급속충전은 최대 183kW를 받아 10%에서 80%까지 약 29분이 걸린다. 요즘 나오는 800볼트 전기차들이 20분 안팎을 내세우는 것과 비교하면 빠른 편은 아니다. MEB가 400볼트 구조라 생긴 한계다.
다만 이 차의 쓰임새를 생각하면 치명적인 약점은 아니다. 핫해치는 서킷을 도는 차가 아니라 평일에는 출퇴근을 하고 주말에 굽은 길을 찾아가는 용도로 팔려 왔다. 601km면 주중 충전을 한 번으로 끝낼 수 있는 거리다.
GTI 버튼을 따로 만들었다

폭스바겐은 그동안 전기 고성능 모델에 GTX라는 이름을 써 왔다. GTI를 붙이면서 달라진 점은 이름만이 아니다.
DCC 가변 댐퍼와 스프링, 안티롤바를 GTI 전용으로 다시 맞췄고, 불이 들어오는 전용 버튼으로 켜는 GTI 주행 모드를 따로 넣었다. 12.9인치 터치스크린 아래에는 실물 스위치를 되살렸고, 스티어링 휠 버튼도 눌리는 방식으로 바꿨다. 터치 일변도로 갔다가 비판을 받았던 부분을 되돌린 것이다.
토네이도 레드와 뵈르터제 휠

외관은 1980년대 GTI를 노골적으로 불러온다. 토네이도 레드 도장, LED 매트릭스 헤드램프를 가로지르는 붉은 띠, 검은 벌집 그릴에 붉은 포인트를 넣었다. 20인치 휠에는 뵈르터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매년 오스트리아 뵈르터제 호숫가에서 열리던 GTI 모임에서 따온 이름이다.

실내는 붉은색과 검은색, 회색을 섞은 버킷 시트로 채웠고 스포츠 스티어링 휠에는 12시 방향 표시를 넣었다.
체크무늬 시트와 골프공 모양 변속 노브로 대표되던 GTI의 상징 중 일부는 전기차에서 쓸 자리가 없어졌다. 변속기가 없으니 노브도 없다. 그 빈자리를 붉은 띠와 전용 휠 이름, 전용 모드 버튼 같은 새 기호로 메우는 작업이 이번 디자인의 숙제였던 셈이다.
사전 판매는 2027년 초에 시작된다. 유럽 시장이 대상이고 미국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앞서 나온 GTX 퍼포먼스 계열의 영국 값이 4만 6000파운드를 넘었으니, 값도 그 언저리에서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결정에서 읽히는 것은 이름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다. 폭스바겐은 전기 고성능 모델에 GTX라는 새 이름을 붙여 내연기관 계보와 분리해 왔다. 그런데 GTX는 소비자에게 각인되지 못했다. 50년 동안 쌓인 GTI라는 자산을 놔두고 새 이름을 키우는 일이 생각보다 비쌌던 것이다.
이름을 옮겨 오는 선택에는 위험이 따른다. GTI를 붙인 전기차가 기대에 못 미치면 원래 이름의 값어치까지 함께 깎인다. 폭스바겐이 출력 숫자 하나를 앞세우는 대신 댐퍼와 스프링, 안티롤바를 전용으로 다시 맞췄다는 점과 실물 스위치를 되살렸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결국 이 차가 GTI라는 이름값을 지켜 낼지는 숫자가 아니라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감각이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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