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이 양산 직전 단계의 전기차 콘셉트 미션 에피션시를 공개했다. 공기저항계수 0.158로 도로 주행이 가능한 차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늘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갈래다. 배터리를 키우거나, 같은 전기로 더 멀리 가게 만드는 것이다. 앞쪽은 무게와 값이 따라 오르고 충전 시간도 길어진다. 미션 에피션시는 뒤쪽만 파고든 차다. 배터리 용량은 54.9kWh로 요즘 소형 전기차 수준에 머문다.

공기저항계수 0.158, 전면적은 2.08제곱미터

폭스바겐 미션 에피션시 측면
폭스바겐 미션 에피션시 / 사진=폭스바겐

핵심 수치는 공기저항계수 0.158이다. 양산 전기차가 보통 0.22에서 0.28 사이에 있으니 큰 격차다. 여기에 전면적을 2.08제곱미터로 줄여 공기를 뚫고 나가는 데 드는 힘 자체를 낮췄다. 길이는 4775mm인데 높이가 1392mm에 그쳐, 일반적인 준중형 전기차가 아니라 납작한 4인승 쿠페에 가까운 비율이다.

타이어도 따로 만들었다. 콘티넨탈 에코콘택트 7을 바탕으로 한 콘셉트 타이어로 회전저항이 톤당 4.9kg이다. 유럽 연비 등급에서 가장 높은 A등급 기준보다도 25%가량 낮다. 공기저항과 회전저항을 동시에 끌어내린 구성이다.

100km에 6.48kWh, 1278km를 달렸다

폭스바겐 미션 에피션시 후면
폭스바겐 미션 에피션시 / 사진=폭스바겐

효율 수치는 세 갈래로 공개됐다. 경사가 없는 길에서 시속 68km로 정속 주행하며 보조 장치를 모두 끈 이상 조건에서는 100km당 6.48kWh를 썼다. 실제 도로에서 충전 손실까지 포함하면 7.51kWh, 손실을 빼면 6.89kWh다. 국내에서 팔리는 전기차가 100km당 17에서 20kWh를 쓰는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이 수치가 갖는 의미는 충전 비용으로 환산하면 뚜렷해진다. 국내 급속충전 요금을 kWh당 350원 안팎으로 잡으면, 100km를 달리는 데 드는 비용이 일반 전기차는 6000원대인 반면 이 차는 2000원대로 내려간다. 배터리를 키우지 않고도 같은 효과를 내는 방식이라 차량 값과 무게에서도 유리하다.

주행 시험은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출발해 폴란드와 체코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까지 이어졌다. 총 주행거리는 1278.36km, 평균 속도는 시속 67.72km, 최고 속도는 시속 138km였다. 도착 시점에도 164km를 더 갈 수 있는 전기가 남아 있었다. 중간에 충전은 한 번만 했다.

특수 부품이 아니라 양산 기술로 만들었다

폭스바겐 미션 에피션시 실내
폭스바겐 미션 에피션시 / 사진=폭스바겐

동력계는 오히려 평범하다. 앞바퀴를 굴리는 모터 하나가 99kW, 135마력을 낸다. 바탕이 되는 뼈대는 폭스바겐이 ID 시리즈에 쓰는 MEB를 개량한 MEB+다. 좌석은 2+2 배치이고 짐칸은 481리터로 실용성도 어느 정도 남겼다.

토마스 셰퍼 폭스바겐 브랜드 최고경영자는 미션 에피션시가 대중을 위한 기술이라는 폭스바겐의 방향을 보여 준다고 밝혔다. 특수 부품이 아니라 양산에 쓰는 기술로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다. 카이 그뤼니츠 기술개발 담당 이사도 저렴한 대량 생산 기술로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차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XL1의 DNA를 다시 꺼냈다

폭스바겐 미션 에피션시 전면
폭스바겐 미션 에피션시 / 사진=폭스바겐

안드레아스 민트 디자인 총괄은 차체가 기능과 공기역학 법칙에 온전히 헌신했다고 표현하며, 과거 XL1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다고 밝혔다. XL1은 폭스바겐이 2013년에 내놓은 초효율 하이브리드로 100km를 0.9리터로 달렸던 차다. 공기저항계수는 0.189였다. 미션 에피션시는 그 기록을 다시 끌어내린 셈이다.

공기저항계수는 차가 공기를 얼마나 매끄럽게 가르는지를 나타내는 값이다. 값이 낮을수록 같은 속도를 유지하는 데 드는 힘이 줄어든다. 특히 고속에서 영향이 커지는데, 공기저항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 늘어나기 때문이다. 시속 100km 이상에서는 전기차가 쓰는 에너지의 절반 이상이 공기를 밀어내는 데 들어간다는 분석도 있다. 고속도로 주행에서 전기차 주행거리가 크게 줄어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전저항도 같은 맥락이다. 타이어가 굴러갈 때 고무가 눌렸다 펴지면서 에너지가 열로 빠져나가는데, 이 손실을 줄이면 같은 전기로 더 멀리 간다. 다만 회전저항을 낮추면 접지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 제동 성능과 맞바꾸는 관계가 된다. 미션 에피션시가 전용 타이어를 따로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이 차는 판매용이 아니다. 납작한 차체와 좁은 뒷좌석, 전용 타이어는 그대로 양산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여기서 얻은 기술 가운데 일부는 양산차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공기 흐름을 정리하는 하부 커버나 저저항 타이어, 공력을 고려한 휠 디자인은 이미 여러 전기차에 적용되고 있다. 폭스바겐이 노린 것은 판매가 아니라 기준점을 옮기는 일에 가깝다. 배터리를 키우는 경쟁이 한계에 부딪히는 시점에, 효율로도 주행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기차 경쟁이 배터리 용량에서 효율로 옮겨 갈 수 있다는 점도 시사한다. 배터리는 원재료 값과 공급망에 묶여 있어 무한정 키우기 어렵다. 반면 공기저항과 회전저항을 줄이는 일은 설계 역량의 문제다. 이 방향이 표준이 되면 전기차의 무게와 값이 함께 내려갈 여지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