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승 전기 SUV가 한 번 충전으로 936km를 달렸다. 스코다가 자사 최대 모델 페아크로 세운 기록이다. 체코 믈라다볼레슬라프를 출발해 네덜란드 잔트포르트까지, 8월 25일과 26일 이틀에 걸쳐 중간 충전 없이 주파했다.

숫자가 눈에 띄는 이유는 인증치와의 차이에 있다. 페아크의 WLTP 인증 주행거리는 최대 647km다. 이번 기록은 그보다 289km, 비율로 45% 더 나왔다. 보통 실주행에서는 인증치를 밑도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에서 방향이 반대다.

100km에 9.2kWh를 썼다

기록의 실체는 전비다. 936km를 달리는 동안 100km당 평균 9.2kWh를 썼다. 국내에서 쓰는 단위로 바꾸면 1kWh로 10.9km를 간 셈이다. 7인승 대형 SUV의 수치로는 이례적으로 낮다. 같은 체급의 전기 SUV가 보통 100km당 18~22kWh를 쓴다.

936km가 어느 정도인지는 국내 거리로 옮기면 가늠하기 쉽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경부고속도로로 약 400km다. 왕복하고도 130km가 남는 거리를 충전 없이 달렸다는 뜻이다.

측정에는 독일 인증기관 TÜV SÜD가 입회했다. 제조사가 자체 발표하는 기록과 달리 제3자가 거리와 충전 상태를 확인했다는 뜻이다. 운전대는 두 사람이 나눠 잡았다. 페아크 모델 총괄인 마레크 예주와 고전압 배터리 전략을 맡고 있는 야쿠프 크르스다.

936km를 마치고 네덜란드 잔트포르트에 도착한 두 운전자
기록 주행을 마친 페아크 / 사진=스코다

이 숫자를 그대로 믿으면 안 되는 이유

다만 이런 기록 주행은 일상 주행과 조건이 다르다. 속도를 낮게 유지하고 급가속과 급제동을 피하며, 공조 사용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전비에 유리하게 운전한다. 스코다도 이 점을 숨기지 않았다. 주행을 맡은 쪽에서 “실제 고객은 이렇게 몰지 않을 것이고, 페아크가 제공하는 것들을 그대로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기록이 의미가 없지는 않다. 같은 방식으로 몰았을 때 다른 차보다 얼마나 더 가는지는 차가 가진 효율 설계의 상한을 보여 준다. 배터리 용량이 아니라 공력과 구동계, 타이어가 만드는 차이다.

WLTP는 유럽의 공인 측정 기준이다. 도심과 교외, 고속 구간을 섞은 주행 모드를 실험실에서 돌려 산출한다. 한국의 상온 복합 인증보다는 수치가 다소 후하게 잡히는 편이어서, 647km를 우리 기준에 놓으면 550km 언저리까지 내려온다고 보면 된다.

들판을 지나는 스코다 페아크
스코다 페아크 주행 / 사진=스코다

91kWh 배터리에 후륜구동 하나

기록에 쓰인 사양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배터리는 총용량 91kWh, 실제로 쓰는 용량은 86kWh다. 총용량과 실사용 용량이 다른 것은 배터리를 끝까지 비우고 꽉 채우면 수명이 빨리 줄기 때문이다. 위아래로 여유분을 남겨 두는 것이 보통이고, 페아크는 그 폭이 5kWh다. 모터는 뒤차축에 하나만 두고 210kW를 낸다. 사륜구동이 아니라 후륜구동이고, 휠은 19인치에 구름저항이 낮은 타이어를 기본으로 신었다.

타이어도 변수다. 구름저항이 낮은 타이어는 굴러갈 때 변형이 덜해 에너지를 덜 잡아먹는다. 대신 접지력과 배수 성능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전기차가 인증 주행거리를 늘리려고 이런 타이어를 기본으로 다는 것은 흔한 선택이다.

효율의 열쇠는 공기저항계수 0.249다. SUV 차체로 0.25를 밑도는 값은 드물다. 스코다는 여기에 손잡이가 차체에 묻히는 플러시 도어핸들을 넣었고, 빛 투과량을 조절하는 다이내믹 셰이드 컨트롤 파노라마 루프와 양방향 충전도 브랜드 최초로 적용했다.

페아크의 기록과 제원
스코다 페아크 기록 정리 / 그래픽=카인사이트

브랜드 최대 모델이 노리는 자리

페아크는 스코다가 만드는 차 가운데 가장 크고 공간이 넓은 모델이다. 체코 믈라다볼레슬라프 본공장에서 만든다. 기록 주행의 출발지가 바로 이 공장이었다. 지금까지 받은 주문이 1만 대를 넘었다.

공기저항계수 0.249라는 숫자가 나온 배경에는 차체 비례가 있다. SUV는 앞면 면적이 넓어 공기를 밀어내는 데 힘이 많이 들고, 3열까지 두면 지붕이 뒤까지 평평하게 이어져 뒤쪽에서 공기가 떨어져 나가며 저항을 만든다. 손잡이를 차체에 묻고 하체 흐름을 정리하는 작업이 이 체급에서 특히 값을 하는 이유다.

7인승 전기 SUV는 유럽에서 선택지가 많지 않은 구간이다. 아이를 포함해 여섯 일곱 명이 타면서 장거리를 가야 하는 수요는 그동안 디젤 대형 SUV나 미니밴이 받아 왔다. 충전 없이 900km를 넘길 수 있다면 이 수요가 전기차로 넘어오는 문턱이 낮아진다.

국내 출시 계획은 나와 있지 않다. 다만 같은 폭스바겐그룹 안에서 쓰는 부품과 플랫폼이 겹치는 만큼, 이 차가 보여 준 효율 설계는 국내에 들어오는 그룹 내 다른 전기차에도 순차적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