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지난 11일 집배 업무에 맞춘 더 기아 PV5 카고를 우정사업본부에 공급하고 이달부터 전국 우체국에 순차 배치한다고 밝혔다. 물량은 200대다.

눈여겨볼 대목은 납품 방식이다. 양산차를 그대로 넘긴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차를 쓸 사람이 먼저 타 보고 고칠 곳을 짚은 뒤에 만들었다.

두 달을 태우고 의견을 받았다

기아는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약 두 달 동안 전국 9개 지방우정청 산하 거점우체국에서 집배원이 직접 차를 운행하게 했다. 그리고 그 의견을 설계에 반영했다.

바뀐 곳은 크게 셋이다. 좁은 골목과 주차장에서 문이 부딪히는 일이 잦다는 지적에 도어 파손 방지 장치가 들어갔다. 짐을 끌어 옮기는 작업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 적재함 바닥에는 알루미늄을 깔았고, 요철을 없애 바닥을 평탄하게 다듬었다. 하루에 수백 번 타고 내리는 업무를 고려한 저상화 설계와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도 함께 담겼다.

세 가지 모두 카탈로그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항목이다. 문 파손 방지나 바닥 재질은 시승 한 번으로는 필요성이 드러나지 않고, 같은 동작을 수백 번 반복하는 사람만 알아채는 종류다. 집배원을 두 달 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재함 바닥에 알루미늄을 까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편물 상자를 바닥에 놓고 끌면 플라스틱 표면은 금세 긁히고 파인다. 한번 파이면 다음 상자가 걸리고 작업 속도가 떨어진다. 차를 오래 쓰는 쪽에서는 내구성이 곧 작업 효율이 된다.

처음부터 짐칸을 보고 만든 플랫폼이다

기아 PV5 카고 적재함 내부
기아 PV5 카고 적재함 내부 / 사진=기아

PV5는 목적기반차량 전용 전동화 플랫폼인 E-GMP.S로 만들어졌다. 승용 플랫폼을 개조한 전기 화물차와 갈리는 지점이 여기다. 짐칸을 먼저 놓고 설계했기 때문에 바닥을 낮추고 공간을 네모반듯하게 뽑을 여지가 크다.

배터리는 기본형 51.5kWh와 항속형 71.2kWh로 나뉜다. 카고 롱 트림은 적재용량 4420리터에 적재고를 419mm까지 낮췄고, 항속형은 1회 충전으로 최대 377km를 달린다.

이달 공개된 카고 컴팩트는 전장 4495mm로 카고 롱보다 200mm 짧다. 51.5kWh 배터리로 복합 265km를 달리며 도심에서는 301km, 고속도로에서는 221km다. 적재중량 650kg, 적재공간 4030리터에 값은 4100만원부터다. 보조금을 반영하면 2000만원대 후반까지 내려가 1톤 전기 트럭과 값이 겹치는 구간에 들어선다.

8월까지 3만 9000대가 팔렸다

출고를 기다리는 기아 PV5 카고
출고를 기다리는 기아 PV5 카고 / 사진=기아

성적은 빠르게 올라왔다. 지난해 약 8500대를 판 PV5는 올해 8월까지 3만 9000대 넘게 팔려 연간 목표인 5만 4000대의 72%를 채웠다. 국내 상용차 시장에서 월 1000대를 넘기며 1위에 오른 적도 있고, 2026 세계 올해의 밴에 뽑혀 국내 브랜드 최초라는 기록도 남겼다.

생산은 화성 오토랜드의 전용 공장이 맡는다. PV5를 만드는 EVO 플랜트 이스트가 연산 10만 대 규모이고, 2027년 가동을 앞둔 웨스트는 연산 15만 대로 PV7 등을 담당한다. 두 곳을 합치면 연 25만 대 체제다. 기아는 2030년까지 목적기반차량을 연 23만 2000대 팔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200대가 판매량보다 중요한 이유

기아 PV5 카고 적재함
기아 PV5 카고 적재함 / 사진=기아

200대는 올해 판매 목표의 0.4%에도 못 미치는 물량이다. 그런데도 이번 공급이 눈길을 끄는 것은 공공기관이 전국 단위로 굴리는 차라는 점 때문이다. 법인과 공공 수요는 한 번 들어가면 교체 주기까지 물량이 이어져, 당장의 판매 숫자보다 레퍼런스로서의 값어치가 크다.

기아는 한국전력공사, 쿠팡파트너스연합회, 지오영 등과도 업무별 맞춤형 차량을 놓고 협력을 이어 가고 있다. 앞으로는 오픈베드와 교통약자용 모델, 샤시캡 도너 모델, 프라임을 차례로 내놓을 계획이어서 라인업은 10종까지 늘어난다.

국내 상용차 시장에서 1톤 트럭이 차지해 온 자리는 특별하다. 짐을 싣는 일이라면 업종을 가리지 않고 같은 차를 썼고, 바뀌는 것은 적재함 위에 무엇을 얹느냐뿐이었다. PV5가 노리는 지점은 그 반대다. 업무마다 차 자체를 다르게 만들어 내보내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성립하려면 물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쓰임새별로 나눠 만들수록 한 사양당 생산량은 줄어들고 단가는 올라가기 때문이다. 기아가 연 25만 대 규모의 전용 공장을 먼저 지은 것도 그래서다. 판매가 늘수록 사양을 더 잘게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둔 셈이다.

쓰임새를 잘게 쪼개 대응하는 이 방식이 1톤 트럭이 쥐고 있던 시장을 얼마나 가져올지가 관전 포인트다. 우체국에 들어간 200대는 그 실험의 첫 성적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