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중국 합작사 베이징현대가 9월 29일 전기 세단 아이오닉 V를 공식 출시한다. 베이징현대는 9월 22일 웨이보를 통해 출시 일정을 알렸고, 세부 조건은 출시 당일 공개하겠다고만 밝혔다.

아이오닉 V는 8월 청두 모터쇼에서 사전예약을 시작했다. 트림은 셋이고 사전예약가는 11만 9900위안(약 1만 7770달러)에서 13만 9900위안 사이다. 현대차가 중국에서 아이오닉 브랜드를 띄운 뒤 내놓는 첫 양산차이며, 4월 베이징 모터쇼에 세웠던 비너스 콘셉트의 양산형이다.

값을 먼저 중국 시장에 맞췄다

11만 9900위안이라는 시작가는 현대차가 중국에서 어떤 구간을 노리는지 드러낸다. 중형 세단이면서도 중국 브랜드의 준중형 전기 세단과 같은 값표에 올라간다. 국내에서 파는 아이오닉 계열의 가격대와 나란히 놓고 볼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현대차의 중국 판매는 한때 연 100만 대를 넘었지만 지금은 그 자리를 중국 브랜드가 채웠다. 공장 한 곳은 이미 창안에 넘겼다. 그 상황에서 다시 들어가려면 브랜드 인지도보다 값과 사양으로 먼저 설명해야 한다는 판단이 시작가에 담겨 있다.

차체는 전장 4900mm, 전폭 1890mm, 전고 1470mm에 휠베이스가 2900mm다. 뒤쪽으로 흐르는 패스트백 실루엣에 프레임리스 도어를 달았다. 외장은 사이버 골드, 디멘션 퍼플, 감마 그린, 마그네틱 그레이를 포함해 여덟 가지다.

전장 4900mm에 휠베이스 2900mm라는 비율은 앞뒤 오버행을 짧게 눌러 실내를 늘린 전기차 특유의 구성이다. 국내에서 파는 아이오닉 6가 전장 4855mm에 휠베이스 2950mm이니 덩치는 비슷하다. 다만 아이오닉 6가 트렁크 뚜껑이 따로 열리는 세단인 반면, 아이오닉 V는 뒷유리까지 함께 들리는 패스트백이라 적재 방식이 다르다.

중국팀이 그리고, 중국 부품으로 채웠다

현대차 아이오닉 V 외장 색상
현대차 아이오닉 V / 사진=베이징현대

아이오닉 V는 개발 주도권이 한국이 아니라 중국에 있었다. 현대차 중국 디자인센터가 개발을 이끌었고 처음부터 중국 소비자를 겨냥해 설계했다. 동시에 다른 시장으로 수출할 수 있는 글로벌 모델로도 계획했다고 현대차는 설명한다.

플랫폼은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구조인 E-GMP를 쓴다. 싱글모터 두 종류로 나오고 출력은 140kW(188마력)와 168kW다. 배터리는 CATL이 공급하는 리튬인산철(LFP)이며 용량은 53.5kWh와 66.8kWh다. LFP는 니켈·코발트를 쓰는 배터리보다 에너지밀도가 낮은 대신 값이 싸고 수명이 길다. 중국에서 팔리는 보급형 전기차가 대부분 이 화학 조성을 택한다.

주행거리는 중국 기준인 CLTC로 520km에서 650km다. CLTC는 국내에서 쓰는 산업통상자원부 기준이나 미국 EPA 기준보다 후하게 나오는 측정법이어서, 같은 차라도 국내 인증을 받으면 숫자가 줄어든다. 충전은 800V 구조를 얹어 급속충전을 지원한다.

화면과 AI를 앞세웠다

현대차 아이오닉 V 전면
현대차 아이오닉 V / 사진=베이징현대

베이징현대가 가장 힘을 준 대목은 실내다. 27인치 4K 초박형 중앙 화면을 대시보드에 걸고, 그 화면을 돌리는 칩으로 퀄컴 스냅드래곤 8295를 썼다. 앞유리에 정보를 띄우는 ‘사이버 아이’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넣었다.

인포테인먼트에는 중국산 생성형 AI를 통째로 들여왔다. 바이두의 어니봇과 바이트댄스의 도우바오를 함께 붙여 음성으로 차를 다루게 했다. 주행 보조는 베이징현대가 모멘타와 공동 개발한 시스템으로, 고속도로에서 L2+ 수준의 기능을 낸다.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고집하지 않고 현지 공급망의 완성품을 그대로 가져다 쓴 셈이다. 중국 소비자가 전기차를 고를 때 화면과 음성 비서의 반응 속도를 앞세운다는 점, 그리고 그 기준을 중국 브랜드가 이미 높여 놓았다는 점을 인정한 선택이다.

5년 안에 20종, 2030년 50만 대

현대차 아이오닉 V 실내
현대차 아이오닉 V 1열 실내 / 사진=베이징현대

현대차는 4월 중국에 아이오닉 브랜드를 공식 도입하면서 향후 5년 동안 순수 전기차와 주행거리연장형을 합쳐 20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목표는 2030년 중국 판매 50만 대다.

아이오닉 V는 그 계획의 첫 시험대다. 중국 안에서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고 현지 부품사와 함께 원가를 낮추는 방식이 통하는지를 판매량으로 확인하게 된다. 첫 모델이 자리를 잡지 못하면 20종이라는 숫자는 계획서에만 남는다.

시험대의 난이도는 낮지 않다. 11만~13만 위안대 중형 전기 세단 구간은 중국에서 가장 붐비는 자리다. 비야디와 지리가 물량으로 누르고 있고, 여기에 샤오미와 지커 같은 후발 주자가 사양을 올려 들어와 있다. 합작 브랜드가 같은 구간에서 버틴 사례는 많지 않다. 둥펑닛산 N7이 지난해 월 1만 대를 넘겼다가 올해 8월 928대까지 내려앉은 것이 가까운 예다.

국내 출시 계획은 없다. 다만 현대차가 수출용 글로벌 모델로도 설계했다고 밝힌 만큼, 중국에서 만든 현대차 전기 세단이 다른 시장에서 팔릴 가능성은 열려 있다. 중국 브랜드가 값으로 유럽과 동남아를 파고드는 흐름에 현대차가 중국산 물량으로 맞서는 구도가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