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턴마틴 공식 수입사 브리타니아 오토가 지난 8월 24일 서울 전시장에서 고성능 S 라인업 3종을 국내에 처음 공개했다. SUV인 DBX S, 스포츠카인 밴티지 S, 그랜드 투어러인 DB12 S다.
세 대의 공통점은 4.0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이다. 경쟁 브랜드들이 하나씩 전동화로 방향을 트는 동안 내연기관 고성능에 다시 무게를 실었다. DBX S와 DB12 S는 지난해, 밴티지 S는 지난달 해외에서 먼저 공개됐다.
같은 엔진으로 성격을 셋으로 갈랐다
S는 출력만 올려 붙인 등급이 아니라는 것이 브랜드 설명이다. 칼 베일리스 애스턴마틴 아시아태평양·중화권 총괄은 S가 단순히 더 높은 출력을 뜻하는 게 아니라 각 모델의 고유한 성격을 더 분명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실제로 손본 곳이 셋 다 다르다. 출력과 변속 반응, 무게를 각각 다른 비율로 건드려 SUV·스포츠카·GT라는 원래 성격을 더 뾰족하게 만드는 쪽으로 갔다. 같은 엔진을 공유하면서도 S 한 글자가 세 갈래로 갈리는 이유다.
가장 센 자리는 SUV가 가져갔다

최고출력은 SUV인 DBX S가 가져갔다. 727마력에 최대토크 900Nm다. 경량화 옵션을 고르면 기존 DBX707보다 최대 47kg을 덜어낼 수 있다.
브랜드에서 가장 강한 출력을 SUV가 맡는 구성은 흔치 않다. 애스턴마틴은 DBX를 처음부터 다이내믹한 SUV로 규정해 왔고, 이번에도 그 자리를 SUV에 남겼다. 무게를 덜면 가속뿐 아니라 제동에서도 이득을 보기 때문에 경량 부품 선택의 값어치가 큰 차종이기도 하다.
스포츠카인 밴티지 S는 680마력에 800Nm다. 쿠페 기준 제로백 3.4초, 최고속도는 시속 325km다. 셋 중 출력은 가장 낮지만 차체가 가벼워 체감 가속은 가장 날카롭다.
출력과 가속 기록이 어긋나는 이유는 무게 때문이다. 같은 힘을 내도 끌어야 할 무게가 가벼우면 기록은 짧아진다. DBX S가 727마력으로 가장 세면서도 가속에서 밴티지 S에 밀리는 것은 SUV라는 체급을 안고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스턴마틴이 DBX S에 경량화 옵션을 따로 마련한 것은 단순한 사양 추가가 아니라 성격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DB12 S는 출력 대신 변속 시간을 건드렸다

그랜드 투어러인 DB12 S는 700마력에 800Nm로, 숫자만 보면 앞의 두 대 사이에 놓인다. 다만 이 차에서 손본 핵심은 출력이 아니라 변속기다. 변속 시간을 0.12초로 줄여 기존 DB12보다 43% 단축했다.
0.12초는 GT 계열에서 보기 드문 수치다. 장거리를 편하게 달리는 성격을 지키면서 운전자가 원할 때만 반응을 날카롭게 세우는 방향으로 정리한 셈이다. 출력 경쟁에서 한 발 빼고 반응 속도로 성격을 만든 손질이다.
국내 판매 가격은 이번 행사에서 공개되지 않았다. 권혁민 브리타니아 오토 대표는 고객들이 Q 바이 애스턴마틴 비스포크 프로그램을 폭넓게 경험하도록 접점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Q 바이 애스턴마틴은 외관 색과 실내 소재를 고객이 직접 고르는 주문 제작 프로그램이다. 카탈로그에 없는 색을 가져와 조색을 맡기는 것도 가능하다. 선택 사양에 따라 값이 크게 벌어지기 때문에 가격표를 한 줄로 못 박기 어려운 구조이기도 하다.
이런 비스포크 주문은 슈퍼카 브랜드의 수익성을 떠받치는 축으로 꼽힌다. 차를 한 대 더 파는 것보다 이미 사기로 한 고객이 옵션을 얹도록 만드는 편이 마진이 크기 때문이다. 판매 대수가 제한된 브랜드일수록 이 비중이 커진다.
V12 뱅퀴시는 아직 검토 단계다

라인업 꼭대기에는 V12를 얹은 GT 뱅퀴시가 있다. 국내 출시를 묻는 질문에 회사 측은 들여오고 싶다는 뜻은 밝혔지만 시기를 확정하지 않았다. 뱅퀴시는 애스턴마틴이 V12를 남겨 둔 마지막 자리여서 국내 도입이 정해지면 상징성이 작지 않다.
사정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본사는 만성 적자를 이어 왔고 국내 수입사도 자본잠식 상태라는 지적을 받는다. 전동화 전환에 들어갈 개발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에서, 이미 가진 V8 엔진으로 상품성을 끌어올리는 쪽을 택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 선택이 꼭 소극적인 것만은 아니다. 초고가 스포츠카 시장에서는 전동화가 오히려 판매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구간이 있다. 이 가격대의 고객 상당수가 엔진음과 변속 감각을 값의 일부로 여기기 때문이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가 하이브리드로 넘어가면서도 엔진 소리를 남기는 데 공을 들이는 이유와 같다.
국내 초고가 시장은 이미 페라리와 람보르기니가 자리를 굳혀 둔 곳이다. 애스턴마틴은 최근 2년간 전시장을 늘리고 신차를 잇달아 들여오며 접점을 키워 왔다. S 라인업으로 기존 고객의 교체 수요를 건드리고 가격대를 잘게 나눠 판매 기회를 넓히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전동화 대신 고성능 내연기관에 다시 베팅한 이번 선택이 실적 반등으로 이어질지가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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