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가 대형 SUV 그랜드 왜고니어를 손보면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 사양을 새로 넣었다. 배터리로 달리다 전기가 떨어지면 엔진이 발전기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이름부터 정리했다. 기존에 왜고니어와 그랜드 왜고니어로 나뉘어 있던 구성을 그랜드 왜고니어 하나로 묶었다. 앞모습도 다시 그렸다. 전면부를 더 매끈하게 다듬어 전기 SUV인 왜고니어 S와 닮은 인상을 줬고, 보닛 배지도 왜고니어 대신 지프로 바꿨다. 크롬 장식은 전부 뺐다.
배터리 92kWh, 전기만으로 150마일

새로 들어간 주행거리 연장형 사양은 바닥에 92kWh 배터리를 깔았다. 전기만으로 약 150마일, 240km를 달린다. 대형 SUV 기준으로는 넉넉한 용량이다. 여기에 3.6리터 펜타스타 V6가 보닛 아래에 들어가는데, 바퀴를 굴리지 않고 전기가 떨어질 때 발전기로만 돌아간다. 시스템 합산 출력은 647마력, 총 주행거리는 500마일을 넘겨 약 800km다.
이런 구조를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라고 부른다. 평소 출퇴근이나 도심 주행은 전기로 해결하고, 장거리에서는 충전소를 찾지 않아도 된다. 대형 SUV는 무게가 무거워 순수 전기로 만들면 배터리가 과도하게 커지는데, 이를 피하는 절충안인 셈이다. 견인이 잦은 미국 시장 특성과도 맞물린다.
기존 트윈터보도 남겼다
전통적인 동력계도 그대로 간다. 3.0리터 허리케인 트윈터보 엔진이 420마력을 내는 사양이 계속 선택지로 남는다. 전동화 사양 하나만 밀어붙이지 않고 둘을 병행하는 구성인데, 충전 여건이 지역마다 크게 다른 미국 시장에서는 현실적인 선택으로 읽힌다.
가격은 오히려 내려갔다. 후륜구동 기본형이 6만 2145달러, 사륜구동이 6만 5145달러다. 리미티드 알티튜드가 7만 1140달러, 최상위 서밋 옵시디언이 9만 3390달러다. 모두 운송비 2595달러가 빠진 값이다. 이전 세대가 8만 달러대에서 시작했던 것과 비교하면 진입 문턱을 크게 낮췄다.
주행거리 연장형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겉보기에 비슷하지만 구조가 다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엔진이 바퀴를 직접 굴릴 수 있고 변속기가 들어간다. 반면 주행거리 연장형은 엔진이 바퀴와 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발전만 담당한다. 운전 감각은 전기차에 가깝고 엔진은 소리로만 존재감을 드러낸다. 대신 발전과 구동을 거치며 에너지 손실이 생겨 고속 장거리에서는 효율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값을 내린 이유는 판매 부진이다
그랜드 왜고니어는 지프가 고급 대형 SUV 시장에 던진 승부수였지만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나 링컨 내비게이터와 맞붙는 구간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약했고, 값도 만만치 않았다. 이름을 하나로 합치고 시작가를 2만 달러 가까이 내린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깔려 있다.
크롬을 전부 걷어낸 디자인 변경도 같은 맥락이다. 전통적인 미국식 고급 SUV 문법에서 벗어나 전동화 라인업과 인상을 통일하려는 시도다. 스텔란티스가 최근 라인업 전반에서 브랜드별 디자인 언어를 다시 정리하고 있는 흐름과도 이어진다.
국내 도입 가능성은 낮다
국내에서 지프는 랭글러와 그랜드 체로키를 중심으로 판매하고 있다. 그랜드 왜고니어는 길이가 5.4미터를 넘고 폭도 2미터에 가까워 국내 도로 사정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로 정식 도입된 적이 없다.
92kWh라는 배터리 용량도 짚어 볼 대목이다. 국내에서 팔리는 아이오닉 5 롱레인지가 84kWh를 쓰는 점을 감안하면, 발전기를 따로 달고도 웬만한 순수 전기차보다 큰 배터리를 넣은 셈이다. 그만큼 차 값과 무게가 올라가지만, 전기만으로 240km를 확보하면 일상 주행의 대부분을 주유 없이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다만 주행거리 연장형 방식 자체는 국내에서도 주목받는 구조다.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전기차의 장점만 취하려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 업체들이 이 방식으로 대형 SUV를 쏟아내고 있고, 국내 제조사도 검토를 이어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프의 선택은 그 흐름에 미국 업체가 합류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미국 시장에서 주행거리 연장형이 주목받는 이유는 견인 때문이다. 대형 SUV와 픽업은 보트나 트레일러를 끄는 용도로 많이 쓰이는데, 순수 전기차는 견인 시 주행거리가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충전소가 드문 구간에서 트레일러를 달고 다니기에는 부담이 크다. 발전기를 달면 이 불안이 사라진다. 지프가 오프로드와 견인을 브랜드 정체성으로 삼아 온 만큼 자연스러운 선택이기도 하다.
스텔란티스는 최근 전기차 전용 모델 계획을 일부 조정하면서 주행거리 연장형과 하이브리드 비중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전기차 수요 증가세가 예상보다 더딘 데 따른 대응이다. 그랜드 왜고니어의 이번 변경은 그 전략이 구체적인 제품으로 나타난 첫 사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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