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가 9월 17일 배터리 셀 하나를 공개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셀인데, 양극활물질을 전부 재활용 원료로 채웠다. 새로 캐낸 광물을 한 톨도 쓰지 않고 만든 셀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 포르쉐의 설명이다.

양극활물질은 배터리에서 전기를 저장하고 내보내는 핵심 재료다. 리튬과 니켈, 코발트, 망간이 여기에 들어간다. 배터리 값의 큰 몫을 차지하고, 채굴 과정의 환경 부담과 공급망 위험도 대부분 이 재료에 걸려 있다.

수명이 끝난 배터리에서 검은 가루를 얻는다

공정은 세 단계다. 첫 단계는 회수다. 수명이 끝난 고전압 배터리를 해체하고 기계로 잘게 부순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검은 가루가 블랙매스다. 배터리 안에 있던 금속들이 뒤섞인 상태로, 여기에 쓸 만한 원료가 전부 들어 있다.

블랙매스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부터 배터리가 폐기물이 아니라 원료가 되기 때문이다. 부수기 전까지는 셀과 모듈, 냉각판과 배선이 뒤엉킨 덩어리지만, 부순 뒤에는 금속을 뽑아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문제는 이 가루에서 금속을 얼마나 순도 높게 골라내느냐다.

독일에 있는 포르쉐 센터에서 나온 배터리가 재료다. 지난 5월부터 이 배터리들을 물 기반 공정으로 처리하기 시작했다. 고온으로 태우거나 강한 용매를 쓰는 기존 방식과 달리 물을 매개로 금속을 뽑아내는 방식이라 에너지와 폐기물이 적게 든다.

수명이 끝난 배터리를 분쇄해 얻은 블랙매스
블랙매스 / 사진=포르쉐

검은 가루를 네 가지 금속으로 다시 나눈다

둘째 단계는 정제다. 블랙매스를 니켈과 코발트, 망간, 리튬으로 갈라낸다. 섞여 있는 금속을 하나씩 분리해 내는 것이 이 공정의 핵심이고, 순도가 충분히 나오지 않으면 새 셀에 쓸 수 없다.

네 가지 금속은 쓰임이 다르다. 니켈은 에너지 밀도를, 망간은 구조 안정성을 맡고, 코발트는 수명과 안전에 관여한다. 리튬은 충전과 방전 과정에서 실제로 오가는 물질이다. 어느 하나만 회수해서는 새 양극활물질을 만들 수 없고, 넷을 모두 필요한 비율로 되살려야 한다.

이 일을 맡은 곳이 실리브다. 2022년 독일 아헨에서 문을 연 회사로, 아헨공대의 연구에서 출발했다. 도르마겐과 베른베르크쾨블리츠에도 설비를 두고 있다. 릴리안 슈비히, 파울 자바르니, 기데온 슈비히 세 사람이 창업했다.

릴리안 슈비히 실리브 공동 최고경영자는 “실리브는 수명이 끝난 배터리에서 원료를 회수하는 데까지 순환의 고리를 닫는다”며 “포르쉐와의 시범 사업은 우리 방식이 실제로 통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방진복을 입고 배터리 모듈을 옮기는 작업자
배터리 해체 공정 / 사진=포르쉐

셋째 단계는 다시 포르쉐로 돌아오는 것

마지막이 재사용이다. 정제한 원료로 양극활물질을 만들고, 그것으로 셀을 만들어 포르쉐 전기차에 넣고 시험한다. 포르쉐가 이 프로젝트에 붙인 이름이 ‘포르쉐에서 포르쉐로’다. 자사 차에서 나온 배터리가 자사 차의 배터리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이 단계에서 확인해야 하는 것은 성능이다. 재활용 원료로 만든 셀이 새 광물로 만든 셀과 같은 용량과 수명을 내는지, 충전과 방전을 반복했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실제 차에 넣고 재야 한다. 원료를 회수하는 기술과 그 원료로 쓸 만한 셀을 만드는 기술은 별개의 문제다.

요아힘 샤르나글 포르쉐 구매 담당 이사는 “리튬과 코발트 같은 원료를 전부 재활용해 만든 배터리 셀로 중요한 기술적 이정표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추가 시험 결과는 올해 하반기에 나온다. 회수한 원료를 실제 배터리 셀 양산에 투입하는 시점은 2028년으로 잡혀 있다.

배터리 순환을 세 단계로 정리한 포르쉐 자료
회수·정제·재사용 3단계 / 사진=포르쉐

왜 완성차 업체가 재활용까지 하나

전기차가 팔리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으면서 수명이 끝난 배터리가 쌓이고 있다. 이 배터리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환경 문제이기 전에 원료 확보 문제다. 리튬과 코발트는 매장지가 몇 나라에 몰려 있고, 값도 국제 정세에 따라 크게 흔들린다.

유럽연합은 배터리 규정을 통해 새 배터리에 재활용 원료를 일정 비율 이상 넣도록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완성차 업체가 재활용 회사와 미리 손을 잡는 것은 규제 대응이자 원료 확보인 셈이다.

시점도 계산에 들어간다. 지금 도로를 달리는 전기차의 배터리가 한꺼번에 수명을 다하는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설비와 공정을 미리 검증해 두지 않으면, 물량이 밀려들 때 처리할 곳이 없어 값싼 경로로 흘러가게 된다. 포르쉐가 양산이 아니라 시범 사업 단계에서 결과를 공개하는 것도 이 시차를 염두에 둔 움직임으로 읽힌다.

국내에서도 사용 후 배터리를 다루는 제도가 손질되고 있다. 다만 지금은 성능이 남은 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로 다시 쓰는 재사용 쪽에 무게가 실려 있고, 금속을 뽑아내 새 배터리로 되돌리는 재활용은 이제 설비가 들어서는 단계다. 포르쉐 사례가 보여 주는 것은 이 고리가 닫히는 데 완성차 업체의 참여가 빠지기 어렵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