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최고경영자가 미국을 향해 중국차 관세를 풀지 말라고 말했다. 9월 19일 전해진 발언에서 그는 영국을 예로 들었다. 한국 완성차 업체의 수장이 다른 나라의 무역 장벽을 유지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한 셈이다.
무뇨스 CEO가 든 근거는 시장 하나가 바뀌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매우 수익성이 좋고 강한 시장이었던 영국이 이제는 중국처럼 됐다”며 “장벽이 없으니 판매 상위권이 전부 중국차”라고 말했다.
영국을 예로 든 이유
영국은 중국산 자동차에 별도의 관세를 매기지 않는다. 유럽연합을 떠난 뒤 독자적인 통상 정책을 쓰면서도 중국차에 대해서는 조사를 벌이거나 추가 세율을 붙이지 않았다. 그 결과가 점유율로 나타났다. 현재 영국 신차 등록의 15%가 중국 브랜드 차량이다.
일곱 대 중 한 대꼴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영국에서 중국 브랜드를 고르는 소비자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준이었다. 무뇨스 CEO가 “중국처럼 됐다”고 표현한 것은 판매 상위 목록의 얼굴이 통째로 바뀌었다는 뜻에 가깝다.
영국이 특별히 방심했다기보다 제도의 공백이 컸다. 유럽연합을 떠나면서 역내 무역 구제 조치의 적용도 함께 끊겼고, 중국차를 따로 겨냥할 근거를 새로 만들지 않았다. 완성차 공장이 많지 않아 보호할 국내 생산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도 대응을 늦춘 배경으로 꼽힌다.

관세를 매긴 유럽에서도 30~40% 싸다
유럽연합은 다른 길을 갔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이 공정 경쟁을 해친다고 판정한 뒤 추가 관세를 붙였고, 역내 생산을 요구하는 이른바 ‘메이드 인 유럽’ 규정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 시장에서 중국차는 경쟁 모델보다 30~40% 싸게 팔린다.
값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는 논쟁거리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지목하는 쪽이 있고, 배터리부터 전장 부품까지 자국 안에서 조달하는 공급망 구조를 드는 쪽이 있다. 유럽연합은 앞의 설명을 택해 관세를 매겼지만, 관세를 물리고도 격차가 남았다는 것은 뒤의 설명도 함께 작동한다는 뜻이 된다.
이 숫자가 무뇨스 CEO 주장의 핵심이다. 관세를 매겨도 값 차이가 이 정도로 남는다면, 관세를 아예 매기지 않는 시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영국이 이미 보여 줬다는 논리다. 가격 경쟁력의 원천이 환율이나 일시적 할인이 아니라 원가 구조에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국의 100% 관세는 언제까지 갈까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에 약 100%의 관세를 물리고 있다. 사실상 진입을 막는 수준이라 중국 브랜드가 미국에서 파는 전기차는 지금 거의 없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점유율을 늘려 온 지난 몇 년은 이 장벽이 서 있던 기간과 겹친다.
무뇨스 CEO의 이력도 발언의 무게에 얹힌다. 그는 현대차로 오기 전 닛산에서 중국 사업을 총괄했다. 중국 업체들이 자국 시장에서 합작사를 어떻게 밀어냈는지를 안에서 지켜본 경험이 이번 경고의 배경에 있다.
다만 관세가 영구적인 방패는 아니다. 세율은 행정부가 바뀌면 조정될 수 있고, 중국 업체들은 이미 관세를 우회하는 경로를 넓히고 있다. 제3국에 공장을 세워 그 나라 원산지로 수출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유럽연합이 관세와 별도로 역내 생산을 요구하는 규정을 준비하는 것도 이 우회를 막기 위해서다.
완성차 업체 수장이 특정 국가의 무역 정책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만큼 미국 시장의 비중이 크다는 뜻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에 전기차 공장을 세워 가동하고 있고, 그 투자 회수는 미국에서 팔리는 대수에 달려 있다. 장벽이 낮아지면 회수 기간이 길어진다.

한국 시장에는 어떤 이야기인가
한국도 중국산 자동차에 별도의 방어 장치를 두고 있지 않다. 한중 자유무역협정에 따라 관세가 단계적으로 내려왔고, 전기차 보조금은 배터리 성능과 사후관리 요건으로 걸러 낼 뿐 원산지를 직접 겨누지는 않는다. 영국과 제도적 조건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다만 현대차그룹이 국내에서 차지하는 몫이 워낙 커서 점유율이 흔들리는 속도는 영국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승용차 전체가 아니라 전기차와 상용차처럼 값이 곧 구매 이유가 되는 구간이다. 이 구간에서는 이미 중국 브랜드가 순위표 안쪽으로 들어와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셈이 또 다르다. 장벽이 낮으면 선택지가 늘고 값이 내려간다. 영국에서 중국 브랜드가 15%까지 올라선 것도 소비자가 그 값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산업 보호와 구매 가격은 같은 정책을 두고 서로 반대편에 선다.
정부가 관세로 대응할지, 보조금 요건으로 대응할지, 아니면 그대로 둘지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 무뇨스 CEO의 발언은 미국을 향한 것이었지만, 같은 질문이 한국에도 던져져 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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