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하노버에서 9월 15일 개막한 상용차 박람회 IAA 트랜스포테이션 2026에 700개가 넘는 업체가 참가했다. 올해 전시장의 주역은 대형 전기 트럭이었다.
지금까지 상용차 전동화는 도심 배송용 소형 밴이나 버스에서 먼저 진행됐다. 하루 주행거리가 짧고 차고지에서 밤새 충전할 수 있어 조건이 맞았기 때문이다. 반면 수백 킬로미터를 달리는 장거리 간선 트랙터는 디젤의 마지막 방어선으로 불려 왔다. 올해 전시는 그 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신호에 가까웠다.
600km와 700km가 나란히 나왔다
BYD는 총중량 44톤급 트랙터 ETT 44를 내놨다. 651kWh 블레이드 배터리에 851V 구조를 얹어 최대 600km를 달린다. 정격 743마력, 최대 1000마력이다. 배터리 보증은 10년 또는 120만km로 걸었다.
볼보트럭은 FH 에어로 일렉트릭으로 최대 700km를 제시했다. 주행거리를 끌어올린 방법이 다르다. 모터 두 개와 6단 변속기를 뒷차축에 통합하는 e액슬 구조를 써서 섀시 공간을 비웠고, 그 자리에 배터리 팩 여덟 개를 넣었다. 최고출력은 623마력, 적재중량은 최대 28톤이다.
메르세데스-벤츠 트럭은 e악트로스 계열을 넓혔다. 5륜 높이를 낮춘 로우라이너 사양을 더해 부피가 큰 화물을 나르는 운송에 대응했다. 수소를 쓰는 넥스트젠H2 트럭의 고객 인도 계획도 함께 공개해, 배터리와 수소를 동시에 끌고 가는 전략을 분명히 했다.
진짜 승부는 충전 시간에서 갈린다

주행거리 못지않게 반복해서 등장한 단어가 메가와트 충전이었다. 상용차에서 충전 시간은 곧 매출이기 때문이다. 트럭이 충전기에 물려 있는 동안은 짐을 나르지 못한다.
BYD ETT 44는 일반적인 CCS2 충전기에서 최대 420kW를 받아 20%에서 80%까지 약 한 시간이 걸린다. 반면 BYD가 함께 내놓은 메가와트 충전 시스템에 물리면 1.5MW를 넘겨 받아 같은 구간을 약 20분에 끝낸다. 볼보 FH 에어로 일렉트릭은 700kW 메가와트 충전에서 약 50분, 기존 350kW CCS에서는 약 85분이다.
유럽의 운전자 근로시간 규정은 일정 시간마다 휴게를 의무화하고 있다. 충전 시간이 이 휴게 시간 안에 들어오느냐가 운행 계획을 바꾸는 분기점이다. 업체들이 충전 속도를 앞다퉈 내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터리와 수소, 디젤이 함께 섰다
눈에 띄는 대목은 업체들이 한 가지에 걸지 않았다는 점이다. 볼보와 메르세데스 모두 배터리 전기, 수소, 디젤을 함께 전시했다. 노선과 지역에 따라 최적해가 다르다는 판단이다. 충전 인프라가 깔린 구간은 전기로, 그렇지 않은 곳은 당분간 디젤로 가되 수소를 장기 대안으로 준비하는 구도다.
중국 업체의 존재감이 커진 것도 올해 전시의 특징이다. 유럽 대형 트럭 시장은 다임러 트럭과 볼보, 트라톤 같은 현지 업체가 오랫동안 나눠 가져 왔다. 여기에 BYD가 배터리와 충전 속도를 무기로 들어오는 구도는 승용차 시장에서 이미 한 번 벌어진 일이다.
총중량 규제가 숨은 변수다
대형 트럭 전동화를 막아 온 진짜 벽은 기술이 아니라 규제였다. 도로가 견딜 수 있는 하중 때문에 총중량 한도가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배터리가 무거워질수록 실을 수 있는 화물이 줄어든다. 600kWh급 배터리는 그 자체로 수 톤에 이른다. 운송 사업자 입장에서는 한 번에 나르는 양이 줄면 그만큼 단가가 올라간다.
유럽은 전기 트럭에 한해 총중량 한도를 일부 완화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 볼보 FH 에어로 일렉트릭이 총중량 48톤, 차세대 FH가 65톤까지 허용되는 것도 이런 제도적 배경이 깔려 있다. 기술 사양만 놓고 국가별로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다.
국내는 인프라가 먼저 풀려야 한다
국내 대형 화물차 전동화는 아직 초기 단계다. 시내버스와 소형 트럭에서 전환이 진행 중이지만 장거리 트랙터 구간은 거의 비어 있다. 충전 인프라도 승용차 중심으로 깔려 있어 대형 차량이 쓸 수 있는 고출력 충전기는 드물다.
주행거리 700km라는 숫자가 국내에서 의미를 가지려면 간선 도로변에 메가와트급 충전기가 놓여야 한다. 유럽은 2030년까지 주요 간선에 대용량 충전소를 두도록 하는 규정을 추진 중이라 조건이 상대적으로 낫다. 기술보다 인프라가 속도를 결정하는 국면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물류비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전기 트럭의 경제성이 확인되는 순간 전환은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차량 가격이 디젤 대비 여전히 높고 중고 가치도 검증되지 않았다. 올해 하노버에서 나온 숫자들이 실제 운행 현장에서 어떻게 확인되는지가 다음 과제로 남았다. 카탈로그에 적힌 주행거리는 대체로 평탄한 노선에 적정 온도를 전제로 한 값이라, 겨울철 산악 구간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가 실제 도입 판단의 기준이 될 전망이다.
카인사이트